[기자 수첩] 하남선관위, 선거 관리인가 권위 행사인가?

서초는 용지 부족, 하남은 막말…정상 개표 취재에 “빨리가라” 겁박

                                                                                                                                                                          이재연 기자  |  hanamilbo@naver.com


하남 선관위, 취재기자에 “소속이 어디냐” “왜 안가냐” 겁박 일삼아
취재기자 겁박·알권리 차단 ‘밀실 행정’ 빈축…간식 돌리며 언론엔 “안 준다” 문전박대
"선거 없는 평시엔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억대 연봉 받으며 선거날엔 군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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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꽃이자 가장 신성해야 할 선거 현장이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행정 참사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오만한 권위주의로 얼룩졌다.

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 내부에 뿌리 깊게 박힌 무사안일주의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중앙선관위 고위 간부들의 자녀 경력직 특혜 채용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전국의 투표·개표 현장을 관리하는 일선 선관위의 기강 해이와 독선은 가히 ‘치외법권 지대’의 제왕들을 연상케 했다.

35년간 정치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선거를 지켜본 본 기자의 눈에 비친 이번 선관위의 행태는 국가 헌법기관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함량 미달’ 그 자체였다.

그 오만함의 극치는 하남시 선관위 개표소에서 그대로 폭발했다.

지난 3일 밤, 민주주의의 최종 성적표를 기록하기 위해 치열하게 취재 중이던 본 기자에게 하남선관위 담당관이 다가와 던진 첫마디는 “소속이 어디냐”라는 고압적인 겁박이었다.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자에게 그는 “다른 방송사는 사진만 찍고 다 갔는데 왜 아직까지 여기 남아 있느냐”라며 마치 퇴거를 명령하듯 몰아붙였다.

개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 선관위 공무원이, 오히려 언론의 감시 눈초리를 귀찮은 방해물로 취급하며 통제하려 든 천박한 언론관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취재진을 향한 최소한의 기본 예의는커녕, 권위주의 시대의 단속반원을 자처한 꼴이다.

취재를 방해하기 위한 하남선관위의 꼼수는 현장 곳곳에서 확인됐다.

개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선거구별 결과표는 취재진과 참관인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약 30m 떨어진 외진 곳에 게시해 둔 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망원렌즈를 동원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거리로 정보를 격리해 두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외치는 가증스러움은 현장에 있던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심지어 기자들이 제대로 앉아 기사를 작성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자석’ 비치 요구마저 칼로 무 자르듯 거절당했다. 투명성과 개방성을 담보해야 할 개표 공간을 그들만의 ‘밀실’로 만들고자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토록 철저하게 취재 환경을 묵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졸함의 극치는 밤샘 취재와 개표 작업으로 모두가 지쳐가던 간식 시간에 연출됐다.

개표소 한쪽에는 구호 물품처럼 수십 박스의 간식이 쌓여 있었고, 선관위 측은 이를 개표 참관인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본 기자와 현장의 일반인들이 자리하자 선관위 담당관은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와 일반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며 매몰차게 선을 그었다.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예산으로 집행된 간식 상자를 앞에 두고 언론과 일반 시민을 철저히 배제하며 선관위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감히 우리를 감시하러 온 자들에게는 물 한 모금, 과자 한 조각도 아깝다는 치졸한 보복이자 모멸감의 선사였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아무런 견제 없이 무풍지대로 남는 선관위의 평시 근무 실태와 조직 전반에 대한 고강도 외부 감사 및 인적 쇄신이 단행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선거 행정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말 것이다.

지금 중앙선관위는 고위직 자녀들의 ‘세습 채용’ 의혹과 서울 서초구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전국적인 비판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민에게는 공정을 팔아 자녀들의 자리를 챙겨주고, 현장 관리는 낙제점을 받은 집단이 바로 지금의 선관위다.

"선거 없는 평시엔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억대 연봉 받으며 선거날엔 군림하나"

선관위를 바라보는 하남시민들과 국민들의 분노는 이제 임계점을 넘었다.

개표 현장을 지켜본 한 시민은 “선관위 공무원들은 선거가 없는 평시 몇 년 동안 도대체 자리를 지키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평소엔 국민 눈에 보이지도 않다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철만 되면 억대 연봉과 헌법기관이라는 완장을 차고 국민과 언론 위에 군림하려 든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내부에서는 자녀 세습 채용으로 직장을 나눠 먹고, 현장에서는 방만한 운영으로 투표용지조차 조달 못 하면서 갑질만 늘었다”고 꼬집었다.